”미국 남자들이 점점 더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ㅡ숀 펜
이시카와 다이가 의원
동성애 묘사가 기독교적 믿음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다
처음 등장했을 때 HIV/AIDS 는 "동성애자들을 향한 자연의 형벌"로 알려졌고 질병은 면역력 결핍으로 변형된 얼굴을 통해 가시화됐다. 에이즈 발병 전후 신체의 변화는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언론매체를 통해 전시되며 비인간의 이미지를 덧씌웠고, 1980년대 내내 이는 곧 당대 게이 남성의 삶의 종착지로 등치되곤 했다.
6개월 전에 나는 립스틱을 바르고, 손톱을 검게 칠하고, 진짜 나를 가리려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고 붐비는 거리로 나갔다. 하지만 모로코에서는 트랜스젠더가 결코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지만, 나는 구타당하지 않았다. 나의 옷을 벗기거나 땅에 질질 끌고 가지도 않았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모르겠다. 아마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달라졌다 해도 많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다.
1969년,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였다. 6월 28일에 경찰이 게이 바를 습격했다. 그 시절에는 '게이가 되는 것'이 아직도 불법이었기 때문에, 꽤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날 밤, 그 바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일이 지긋지긋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정체성 때문에 경찰들이 잔혹하게 대하는 것이 진절머리가 났다. 이유 없이 타겟이 되는 것, 외모 때문에 멸시 당하는 것, 일반 시민들 틈에서 도움을 청할 곳이 경찰 뿐인 것, 도망칠 곳도 없이 코너에 몰리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많이 듣던 얘기 같은가? 그래서, 경찰이 바를 습격했던 그 날 밤, 사람들은 맞서 싸우기로 했다.
20대 초반 한창 연애에 목말라 있을 때에는 뜬금 없이 램프의 요정에게라도 빌고 싶은 소원이 한 가지 있었다. 팔 다리 굵고 등이 운동장처럼 넓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김게이야 김게이야, 그 동안 게이로 살기 난이도 나이트메어 급인 한국 사회에서 음으로 양으로 호모 포비아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왔으니 내가 업적 보상으로 네 소원 하나 들어줄게, 원하는 게 뭐니? 라고 묻는다면 이 초능력을 달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